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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그대 어딜 그리 바삐 가고 있는가? - 산행 후기 -

서운사 수인스님


올 해도 때를 잊지 않고 산과 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고 있다. 지난 여름의 강렬한 태양 빛 속에서도 영원히 간직할 것 같던 푸르름을 벗고 있다. 그 변화를 함께 하기 위해 서운사 식구들과 모처럼 White mountain의 숲으로 향했다.



울긋불긋 곱게 물든 가을 산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향긋한 풀 내음, 즐겁게 노니는 산새들의 속삭임과 조약돌 부서지는 시냇물 소리, 자연이 들려주는 편안한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숨가쁘게 지나는 일상 속에서 느껴볼 수 없는 여유와 즐거움. 가던 걸음 잠시 멈추었을 때 들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내가 듣고 싶어하기만 하면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바쁜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이런 저런 것을 핑계로 그 기회를 미루고 만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뒤돌아 보게 해주는 기회가 있다.
큰 마음먹고 오랜만에 서랍장을 정리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 필요한 것만 내어 쓰다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버린 서랍장에는 그 동안 내 생활의 흔적이 들어있다. 그리고 자주 쓰는 것은 손이 쉽게 닿도록 앞쪽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안쪽으로 놓아 정리한다.


여유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듯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또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의 시간을 자연과 함께 하면 좋은 이유는 조용히 삶의 이치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복잡한 논리나 어려운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한 그루 나무, 우뚝 선 바위를 보며 인생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여기저기 꺾이고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결국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 가지를 보며 생존하고자 하는 힘이 최후의 승리자임을 알 수 있고, 수없이 구르고 닳아 동그랗게 된 예쁜 조약돌을 보면서 거칠고 모난 우리 마음도 지금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순화되는 것임을 약간의 감성과 이성만으로 우리는 삶의 과정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일행이 간 곳은 Flume이란 골짜기였다. 갈라진 절벽 틈새를 따라 물이 흐르고 그 위로 놓아진 길을 오르다 폭포를 만나고 깊은 가을 산 길을 만났다. 산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앞으로 향하는 매 순간 새로운 풍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 모두가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자기 나름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것을 우리는 천천히 느리게 갈수록 많이 볼 수 있다. 빠르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주변이 보일 리 없다,
수백 번 오고 간 거리지만 어느 날 이런 곳이 있었던가 싶은 적이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빨리 먼저 가는 것만이 좋은 것인 줄로 아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가 이룩해 놓은 많은 업적들은 수없이 뒤돌아보고 점검하며 쌓아 올린 것일 수록 더 튼튼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느림의 미학’
그렇게 산을 볼 수 있을 때
진정한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서두르고 있다면 잠시 숨을 돌리자.
아직도 이 가을‘단풍놀이’를 떠나지 않았다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 떠나보자.
단순한 일이다.
어쩌면 부는 바람에 뒹구는 마른 나뭇잎이
인생의 심오한 답을 줄 수도 있다.



“그대 어딜 그리 바삐 가고 있는가?
이 몸은 공적(空寂)하여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한 것도 없다.
이번 생 잠시 인연 따라 나왔다가
인연이 다 되면 인연 따라 갈 뿐이다.
장작 두 개를 비벼서 불을 피웠다면
불은 어디에서 왔는가?
장작 속에서 왔는가,
아니면 공기 중에서
그도 아니면 우리의 손에서 나왔는가?”
(화엄경)








  Name:    TGT

   Posted : 10/18/2013 || 11:0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