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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우리 조상들의 상호 협력 조직,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우리의 미풍양속
그것은, 일의 능률을 올리던 슬기와 협동의 정신이었다.





- 유래 정의 운영 방식 사라진 시기

두레
20세기 초반까지 유지되었던 두레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면, 두레는 모내기나 김매기처럼 일시적으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농사일을 서로 돕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농사일을 위해 만들어진 농촌의 상호 협력 조직 농사철에는 서로 협력해 농사에 힘썼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는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함께 즐겼는데, 때로는 이웃의 두레와 여러 가지 경기를 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라졌다.
품앗이 소규모로 노동을 교환하던 제도 개인과 개인이 상호 협력한다는 점에서 두레와는 형태가 다소 달랐다.

삼한 시대에 유래하여,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조직되었다. 주로 양반이나 부호들 사이에서 행해졌지만, 조선 후기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다 함께 이겨 내기 위한 농민들의 자발적인 계도 생겨났다. 농사일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조직 공통된 이해를 가진 사람들의 지역적, 혈연적 상호 협동을 위한 조직의 한 형태로, 일정한 액수의 돈 혹은 곡식, 피륙 같은 것을 추렴하여 운영하면서 서로 이익을 나누었다. - -

향약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조선 중종 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의 주장으로 처음 시도하였으나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사망-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뒤 이황, 이이 등이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향약을 고쳐 시행하면서 농촌 사회에 널리 퍼졌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덕업상권), 잘못은 서로 살펴 고쳐 주며(과실상규), 좋은 풍속은 키워 나가고(예속상교),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환난상휼)는 네 가지 덕목이 중심이다. 농촌 사회에서 그 지방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자치적으로 시행하던 조직으로, 농민의 이익보다는 유교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양반 계층의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고있다. -


source : 국립민속 박물관, 우리 역사넷

  Name:    TGT

   Posted : 9/29/2017 || 8:51 PM